사회과부도

대만인들이 대만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지키는 진짜 이유 일제시대 청나라 전통 문화

다시읽는사회과부도 2025. 6. 9. 23:25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해요. 바로 우리나라,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만과 한국은 유교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고, 20세기 후반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며 압도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낸 경험이 있어요. 두 나라 모두 권위주의 정권을 거쳐 민주화를 이뤄냈고, 심지어는 20세기 초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경험했다는 공통점도 있죠. 이러한 경험들은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 사회 전반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남겼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0HZH0z4NJQ

 

 

 

하지만 이렇게 닮은 듯 다른 두 나라가, 과거의 역사를 대하는 방식에서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데 한국은 현재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고, 

대만 역시 중화인민공화국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국가의 정체성과 안보에 대한 이슈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역사 인식을 형성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 것 같죠. 특히 일본 식민 통치 시기의 건축물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습니다.

 

자, 그럼 대만은 대체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역사의 흔적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대만의 상징과 자연의 아름다움

대만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상징들이 있죠. 바로 대만에서 가장 높은 건물, 타이베이 101 (Taipei 101 Observatory) 입니다. 지상 101층, 높이 509m에 달하는 이 건축물은 2004년 완공 당시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어요. 우여곡절끝에 13년 뒤 지어진 한국의 롯데월드타워가 555미터로 47미터 더 높은데 둘다 각국의 수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었죠. 타이베이 101은 대만의 저명한 건축가 이주원이 설계하고, 한국의 삼성 C&T도 내장 공사 등에 참여했습니다. 

전통적인 보탑과 대나무 마디를 형상화한 디자인이 정말 인상적이죠? 24층부터 27층에는 중화권 옛 화폐를 이미지한 오브제가 설치되어 있고, 73층에는 구글 대만이 입주해 있다고 하네요. 한국의 롯데월드 타워가 전통 도자기와 붓을 형상화 했다면 대만의 타이베이 101은 마치 하늘로 솟아오르는 대나무처럼, 대만의 역동적인 성장을 보여주려했을까요.

 


대만에는 아름다운 자연도 많습니다. 양밍산 국립공원의 중심에 위치한 치싱산 (Shichisei Mountain) 은 해발 1,120미터에 달하며 약 70만 년 전에 분화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대만은 3,500미터가 훨씬 넘은 산들이 많고, 위산의 경우에는 해발 3,952미터나 되어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하네요.치싱산에 오르면 시나가 한눈에 보인다고 하니, 정말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겠죠? 

이 외에도 상산 (象山, Xiangshan), 다툰산 (Datunshan), 치싱산 트레일 (Qixingshan Trail)과 같은 자연 명소들도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대만의 매력도 상당할 것 같죠.

 

 

 

타이베이역 (Taipei Main Station)은 1891년 문을 열었으며, 공항에서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일 겁니다. 기차역을 넘어 고속철도, 일반철도, 지하철, 공항철도가 만나는 북부 대만의 가장 중요한 교통 허브입니다. 거대한 지하 상가와 상업 시설이 밀집한 쇼핑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죠. 

 

이제 타이베이 시내로 가보시죠.

 

초대 총통 장개석을 표창하는 시설인 중정기념당 (中正紀念堂, Chiang Kai-shek Memorial Hall)은 1980년에 완성되었으며, 대만의 3대 관광명소 중 하나로 꼽힙니다. 중국 전통 궁전 능묘식이 채용되었죠.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이름이 '대만민주기념관'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중정기념당'으로 돌아오는 등, 대만의 복잡한 정치사를 반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중화민국의 국부 쑨원을 기념하는 국립 Sun Yat-sen 기념관 (National Dr. Sun Yat-Sen Memorial Hall)은 1972년에 완성되었고, 원래 쑨원의 삶과 신해혁명 유물을 전시하는 장소로 기능했습니다. 장개석 총통의 장례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죠. 이 공원 광장은 정치 집회 장소로도 자주 사용되었으며, 1987년 계엄령 해제 후에는 학생 운동이나 파업 집합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역사의 흔적,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깃든 곳

 

대만의 역사는 매우 깊습니다.

 

 

17세기에 창건된 보물암 (寶藏巖, Baoshan Yan)은 관음대사를 주신으로 모시지만,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등 다양한 신불을 함께 모시고 있는 산변 불사입니다. 17세기 말 청나라 시대, 민남인이 이주하면서 지어졌다고 하네요. 대만은 불교비율이 20-35% 정도로 알려지며 청이전부터 전래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특이하게도 한국에는 거의 없는 도교가 40%이상으로 보기도 하는데 기복 신앙으로 사찰이나 사당에서 민간 신앙의 신들을 함께 모시는 경우가 많다네요. 그 외에도 기독교가 4-7퍼센트, 일관도가 3%, 이슬람교도 1% 정도라고 하죠.

 

 

타이베이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용산사 (龍山寺, Lungshan Temple)는 1738년에 창건되었고, 타이베이 101, 국립 고궁박물원, 중정기념당과 함께 타이베이의 4대 외국인 관광지로 꼽힐 만큼 유명합니다. 이곳 역시 본존은 관세음보살이지만, 도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가 결합되어 공자, 관우, 마조 등 100개 이상의 신이 모셔져 있어요. 

 

 

대룡대 보안궁 (大龍峒保安宮, Dalongdong Baoan Temple)도 1742년에 창건되었으며, 의료의 신인 호생대제를 주신으로 마조, 관세음보살 등 다양한 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1985년 국가 고적으로 지정되었고, 1918년 일본 통치 시대에 대규모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하네요.

 

 

치유사 (慈祐宮, Ciyou Temple)는 1753년 타이베이 송산구에 세워진 마조 여신 사찰로, 이곳 옆에 유명한 라오허 스트리트 야시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타오위안에도 1897년에 세워진 마조묘인 타오위엔자호궁 (桃園慈護宮, Taoyuan Cihu Temple)이 있으며, 이곳은 북도원의 마조 신앙 중심지로 여겨집니다.

 

 

대만은 타이베이를 둘러싼 신베이, 대북과 신북이죠. 그리고 그 근처의 타오위안과 함께 수도권을 이루며, 중화인민공화국과 가까운 타이중과 남쪽에 타이난, 가오슝이 주요 도시죠.

 

 

이 외에도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문화구역 (桃園忠烈祠暨神社文化園區) 내의 타오위안 공자묘 (孔廟, taoyoan)는 1811년에 세워져 유교 문화의 흔적을 보여주고,

 

 

같은 해 창건된 경복궁 (景福宮, taoyuan)은 우리나라와 한자가 같은데 전염병 퇴치를 위해 세워졌으며 다양한 신앙이 융합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진덕성당 (陳德星堂)은 1860년에 세워진 천씨의 사당이자 고적입니다. 

 

 

타오위안문창궁 (桃園文昌宮)은 1867년에 설립되었으며, 당시 교육 보급을 위한 학당('명선당') 설립 움직임과 관련이 있고, 일제 시기에는 일본 정부가 이곳 안에 국어 학교 분교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서고를 만들어 민중이 열람하게 하여 시립 도서관의 전신이 되기도 했으니, 교육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이처럼 대만에는 청나라 시대부터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며 형성된 역사의 층위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불교, 소수 민족의 이슬람 문화, 유교 등 다양한 문화와 인종들이 유입되면서 대만이라는 국가를 형성했고, 음식과 문화도 다양해졌다고 해요.

 

일제시대 건축물, 허물지 않고 삶 속에 스며들게 하다

 

대만이 한국과 가장 다르게 역사를 대하는 방식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바로 일본 식민 통치 시대의 건축물을 대하는 태도예요. 한국은 아픈 역사라며 지우거나 도려내 듯 많은 건축물을 철거했지만, 대만은 이 건축물들을 그대로 재활용하거나 보존하고 있습니다. 아픈 역사도 기록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덕분에 1890년대부터 1945년까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죠. 어떤 건물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요?

 

 

교통의 중심지: 

타이중 기차역 (Taichung station)은 1905년 목조로 시작해 1917년 붉은 벽돌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2016년 고가역이 개통된 후에도 옛 역 건축물은 남아있습니다. 

 

교육과 지식의 공간: 

 

현재 국립대만사범대학 강당 (대만사범대학) 건물은 1929년 타이베이 고등학교 강당으로 지어졌던 절충주의 양식 건축물입니다. 

 

 

국립대만대학 문과대학 (College of Liberal Arts, National Taiwan University)의 전신은 1928년 설립된 타이베이 제국대학 문정학부였고, 당시 식민지 연구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국립대만대학교 역사관(國立臺灣大學校史館, Gallery of National Taiwan University History)은 1930년 타이베이 제국대학 부속 도서관으로 완공된 건물입니다. 

 

 

룽안포 황택양양거 (龍安坡黃宅濂讓居, Longanpo Huang Family Residence)는 1897년 황씨 가문이 지은 대저택으로, 현재는 타이베이 시립 용문국민중학교 캠퍼스 내에 그대로 보존되어 학교 건물 건축의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옛 건물이 새로운 세대의 교육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참 신선하죠.

 

 

행정 및 공공 시설: 타이베이 북경찰서 (臺北北警察署)는 1933년 준공된 3층 건물로, 지금은 원래 모습을 복원하여 대만신문화운동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타이베이시정부 구사 (臺北市政府舊廈)는 원래 일반 초등학교 건물로 지어졌으나, 1945년부터 시청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본관이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양쪽 날개는 중학교 교실로 사용됩니다. 

붉은 벽돌과 흰색 장식이 특징인 타츠노식 건축물이라고 하네요. 

 

 

타이중주청 (臺中州廳, Taichung Prefectural Office)은 1913년 타이중주의 행정 중심이었으며, 현재까지 구 타이중시 정부의 소재지로 사용되다가 역사 건축물로 선정되었습니다. 

 

타오위안 경찰서 일본식 기숙사군 (桃園警察局日式宿舍群)은 1937년 경찰 기숙사 건물로, 현재는 타오위안 77예문정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재로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다리이 보정집회소 (大里杙文化館) 역시 일제 시대 집회소로 사용되던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1999년부터 문화관으로 활용하고 있죠. 

 

 

타이베이 수돗물 박물관 (臺北水道水源地, Museum of Drinking Water)은 1895년 일본 내무성이 대만의 위생 개선을 위해 추진한 상수도 시설의 일부로, 1907년 정수장이 설치되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주거와 상업의 흔적: 

대만에서는 상업의 발달로 거대한 저택들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주규거 (聚奎居)는 1920년 우즈 지역의 부유한 상인 천샤오종이 지은 약 400평 규모의 양옥입니다. 

 

 

다다오청 구택 (大稻埕辜宅)은 1920년 루강의 구가가 지은 저택으로, 지금은 유치원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만화림택 (萬華林宅)은 1932년 양파 대판상, 무역상이었던 임씨 일가가 지은 저택으로, 현재 1, 2층은 스타벅스에 임대되어 있습니다. 

부유한 차 상인 왕팡췬이 설립한 신방춘차행 (新芳春茶行)도 1930년에 세워져 다다오청 지역의 차 산업 역사를 보여줍니다. 

 

룽안포 황택양양거이국정 생가 (李國鼎故居) 같은 고급 관사/주택도 일제 시대에 지어졌습니다. 

 

이국정 생가는 일제 시기 최고 등급 관사의 두 번째 기숙사였고, 이후 재무부 장관이었던 이국정 선생이 거주했으며, 거실에 세 개의 뉴스를 동시에 시청하기 위한 대형/소형 TV 두 대가 있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런 곳들은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문화와 예술 공간으로의 변신: 

일제 시대 경찰관 기숙사였던 건물은 1953년부터 채서월 선생이 무용을 가르치던 채서월무용연구사 (蔡瑞月舞蹈研究社)가 되었고, 지금은 문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기주암(紀州庵)은 1897년 신점계 변에 지어진 정자로, 전후 공무원 기숙사가 되었다가, 이제는 문학 전시, 강의가 열리는 기주암 문학삼림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자등루 (紫藤廬)는 1921년 일본식 공가 숙소로 지어졌으나, 자유주의 학자들의 문화 살롱이 되었고, 찻집으로 개칭된 후에는 문예인과 운동가들의 교류 장소가 되었습니다. 

 

 

전 미국 대사 관저 (前美國大使官邸)는 1925년 미국 영사관으로 지어졌고, 전후 대사 관저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복원되어 활용되고 있습니다. 

 

건국양조장 (建國啤酒廠)은 1919년 설립되어 일제 시대 유일하게 맥주를 생산하던 양조장이었다고 합니다. 

 

 

송산문화창조공원 (松山菸廠)의 전신인 송산 담배 공장은 1937년 대만 총독부 전매국이 지은 곳으로, 직원 복지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춘 '일본 초기 모더니즘' 건축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8년 생산 중단 후, 현재는 문화 창조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화산 1914 창조 공원 (Huashan 1914 Creative Park)은 1914년 와이너리로 문을 열어, 막걸리와 주류를 생산하다가, 2005년 말 창조 공원으로 재개장했습니다. 

 

신부시장 (新富市場)은 1918년 처음 문을 열었고, 현재 건축물은 1935년에 만들어졌는데, 말굽 모양의 안뜰과 모더니즘 양식이 특징이며, 지금도 시장으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을 거예요. 옛 시장 건축물이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다니, 꼭 가보고 싶지 않나요?

 

종교 건축물: 

임제호국선사 (臨濟護國禪寺)는 1911년에 지어진 불교 사찰이고,

 

 

조동종 대본산 대만 별원 종루 (曹洞宗大本山臺灣別院鐘樓)는 1926년에 지어진 종루로, 에도시대 양식의 지붕이 특징입니다. 

 

중산 그리스도 장로교회 (中山基督長老教會)는 1937년 완공된 고딕 양식의 개신교 교회입니다. 

 

대만 그리스도 장로교회 다다오청 교회 (臺灣基督長老教會大稻埕教會)는 1915년에 이춘생이 단독으로 세운 예배당으로, 문과 창문 형태, 기둥 등이. 일본 기독교의 대만 선교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제동가 일본식 기숙사 (齊東街日式宿舍)는 예전에 쌀과 식량을 운송하던 거리였던 제동가에 이국적인 정취를 더하며, 

 

조북병원(朝北醫院)은 1921년 완화 지역의 유명한 병원으로, 서양 역사 양식에 민남 건축의 전통 장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다오청 원형 방공저수지 (大稻埕圓環防空蓄水池)는 태평양 전쟁 중인 1943년 연합군의 공습에 대비해 만들어진 저수지로, 2001년 우연히 발견되어 시정 고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다시 다리 (Daxi Bridge)는 1934년 일본 통치 기간에 현수교로 재건되었고, 입구는 붉은 타일의 바로크 양식 아치형 통로로 설계되었습니다. 보이시나요? 대만은 이렇게 일제 시대에 지어진 수많은 건축물들을 허물어버리는 대신, 그 역사와 시대를 존중하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학교가 되기도 하고, 미술관, 박물관, 문화 살롱, 찻집, 상점, 심지어 유치원이나 스타벅스로 재탄생시켰죠. 여러분은 어떤 선택이 낫다고 보시나요?

 

근현대 건축과 새로운 문화 공간

일본 통치 시대 이후의 건축물들도 대만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국립대만대학교에는 제4대 총장 푸스년의 묘원인 푸위엔 (傅園)이 있는데, 그리스 신전을 모방한 건축 양식이 독특합니다. 

 

동동관은 1960년 농업발전과 토지개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미국 원조자금을 이용해 지어진 건물로, 외벽의 유리 원형 기와가 특징입니다.

 

대만으로 이주한 중화인민공화국 무슬림들이 지은 타이중 모스크 (台北清真寺)는 1948년에 지어졌고,

 

 

타이베이 모스크 (台北清真寺)는 건축가 양탁성이 설계하여 1960년에 완공되었으며, 마치 '천일야화'에 나오는 황궁 같다고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퇴역 군인과 난민들이 세운 용강사원 (龍岡清真寺)은 1954년에 작은 모스크로 시작하여 이후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슬람 사원들은 대만 사회의 당시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국공내전 이후 많은 무슬림 소수민족의 이주가 있었거든요.

 

 

중요한 군사가였으며 이슬람교를 믿었던 백총희 장군의 묘원인 백용음당묘원 (白榕蔭堂墓園)도 무슬림 공동묘지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동해대학의 노사의교회 (東海大学 路思義教堂, Luce Memorial Chapel)는 1962년 완공된 대만의 유명한 현대 건축물 중 하나로, 유명 건축가 천치콴과 베이위밍의 작품입니다. 1955년 기독교계 대학으로 설립된 동해대학교의 상징이죠.

 

현대에 들어서도 대만은 다양한 건축물과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립자연과학박물관 (国立自然科学博物館)은 1986년 타이중시에 건설되었는데, 국립 고궁 박물관 다음으로 연간 관람객 수가 많다고 해요. 

 

 

1996년 문을 연 타이베이 천문 박물관 (Taipei Astronomical Museum)은 타이베이 과학 예술 단지 내에 위치하며,

 

대안 삼림 공원 (大安森林公園, Daan Park)은 1992년 조성된 대규모 도시 공원입니다.

 

스포츠 팬이라면 타이중 인터컨티넨탈 야구장 (台中市洲际棒球場, Taichung Intercontinental Baseball Stadium)을 주목할 만합니다. 2006년 개장하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등 주요 국제 야구 경기가 열리는 곳이죠. 

 

문화 예술을 즐기고 싶다면 2009년 개관한 타오위안 예술 센터 (桃園展演中心, Taoyuan arts center)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와 함께라면 2014년 공개된 대만 최대 공영 놀이공원인 타이베이 어린이 놀이 공원 (Taipei Children's Amusement Park)이나,

 

2012년 아시아 최초로 설립된 홍야 초콜렛 공화국 (宏亞巧克力共和國)을 방문해 보세요. 초콜렛 시럽이 흘러나온 듯한 독특한 외관을 가진 이 박물관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2013년 중리에 새로 지어진 야쿠르트 공장 (養樂多工廠)에서는 야쿠르트의 역사와 제조 과정을 직접 보고, 활성 유산균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흥미롭겠죠? 

 

2016년에 문을 연 대만 전통 극장 센터 (Taiwan traditional theatre center)에서는 대만의 전통 공연 예술을 접할 수 있습니다.

 

최근 건물로는 D Neo Sky Dome D (189m, 2010), The Far Eastern Mega Tower (遠東板橋百揚大樓, 220m, 2013),

캐세이 랜드마크 (Cathay Landmark, 212m, 2014), 

 

타이베이 난산 플라자 (Taipei Nan Shan Plaza, 272m, 2018) 등 초고층 건물들도 대만의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역사를 대하는 두 가지 시선: 대만과 한국

오늘 대만의 다양한 건축물과 공간들을 살펴보면서, 대만이 청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일제시대 건축물을 복원하고 활용하며 과거를 지우거나 훼손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자유 국가'라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청과 일본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지만,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과거를 대하고 있었죠. 일본 패망 후 대만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이주해오면서 복잡한 상황에 놓였고, 국민당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원주민에 대한 탄압('2.28 사건' 등)은 일본 식민 통치 시기와 비교되면서 오히려 일본 통치가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는 인식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현재의 건축물 보존 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죠.

반면, 한국은 "상처를 아문다는 핑계로 부시고 없애는" 방식으로, "일정한 시대의 역사를 지워버린 한국"과 "과거의 모든 역사를 새롭게 활용하는 대만"을 대비시킵니다. 과연 한국처럼 과거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대만처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고 후손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 맞을까요? 어떤게 국익입니까?

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거를 지우는 한국, 과거를 활용하는 대만. 

다음에 대만에 가신다면 오늘 보신 다양한 역사적 공간들을 직접 방문해보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분명 여러분에게 잊지 못할 경험과 깊은 성찰의 기회를 줄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