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시읽는사회과부도입니다. 오늘은 일본의 영토가 어떻게 지금처럼 길~게 형성되었는지 그 비밀을 한번 파헤쳐 볼 시간입니다!일본의 영토, 지금 우리가 아는 혼슈, 홋카이도, 시코쿠, 규슈 이 네 개의 큰 섬을 중심으로 여러 부속 섬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는데요.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영토 확장이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해요. 사실 1869년 이전의 일본 영토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고 합니다. 그럼 어떤 지역들이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는지, 시기별로 자세히 한번 살펴볼까요?
https://youtu.be/UEs_qvaBHRQ?si=zHev6PdjZuOJSs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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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홋카이도 (옛 이름은 '에도')
19세기 후반, 딱 1869년이었어요. 이때 메이지 정부가 근대화를 막 추진하고 있었거든요. 당시 '에도'라고 불리던 이 지역은 주로 아이누족이 살던 곳이었는데, 일본 정부가 이곳을 '홋카이도'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바로 러시아가 남쪽으로 내려오려는 정책에 대응해서 북쪽 국경을 확실하게 정하고 방위 체제를 만들려고 했던 거죠. 이걸 통해서 일본은 북쪽 국경을 확정 짓고, 실질적인 지배를 강화했습니다.
2. 오가사와라 제도
홋카이도 편입 직후인 1876년입니다. 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오가사와라 제도는 1830년대부터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던, 사실상 주인이 없는 섬이었어요. 그런데 일본이 1875년에 영국이랑 협상을 해서 영유권을 인정받았고, 1876년에 정식으로 자기네 땅으로 편입시킨 거죠. 이것도 메이지 정부의 영토 확장 정책 중 하나였습니다.
3. 류큐 제도 (지금의 오키나와)
1879년이었어요. 류큐 왕국은 예전부터 중국이랑 일본 양쪽에 다 조공을 바치던, 반독립 상태의 나라였어요. 하지만 메이지 정부는 1879년에 군대를 보내서 류큐 왕국을 아예 해체해 버리고, '오키나와현'을 설치하면서 류큐 제도를 강제로 일본 영토에 집어넣었습니다. 이건 일본의 서남쪽 국경을 확정하려는 목적이 있었죠.
4. 쿠릴 열도 및 남사할린
1875년과 1905년입니다. 1875년: 일본과 러시아가 **'가라후토(사할린)-치시마(쿠릴) 교환 조약'**이라는 걸 맺었어요. 일본이 사할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러시아로부터 18개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얻어낸 거죠. 1905년: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죠. 그리고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남사할린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일본 입장에서는요!)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이후, 쿠릴 열도는 러시아 땅이 되었어요. 그런데 일본은 지금도 쿠릴 열도 남쪽에 있는 네 개의 섬, 그러니까 쿠나시르, 이투루프,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를 **'북방 영토'**라고 부르면서 계속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5. 센카쿠 제도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라고 하죠)
1895년, 청일전쟁 이후였습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과 함께 일본에 넘어갔습니다. 일본은 그전부터 이 섬을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보고 영유권을 주장했고요. 지금은 중국, 대만과 영유권 분쟁을 하고 있는 곳이죠.
6. 미나미토리시마 (마커스 섬)
1896년에 일본이 영유권을 확정하고 편입한 섬이에요. 도쿄에서 남동쪽으로 무려 1,800km나 떨어져 있는 고립된 섬입니다. 현재는 해군 기지랑 기상 관측소 같은 게 있고요. 일본이 패전하고 나서 한동안 미국이 관리하다가, 1968년에 다시 일본으로 반환되었습니다. 특히 이 섬은 일본 영토 중에서 유일하게 태평양판 위에 있는 곳인데, 2012년에는 섬 주변에서 희토류 금속이 대규모로 발견되면서 또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메이지 유신 이후 활발하게 이루어진 영토 확장 내용이었고요. 사실 일본의 영토는 시대에 따라서 정말 많이 변해왔어요. 크게 보면 옛날 옛적의 분열된 영토부터 에도 시대의 통일된 본토 영토, 그리고 메이지 시대 이후 제국주의적인 확장,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축소되는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좀 더 옛날로 돌아가서, 일본 영토 변화의 큰 흐름도 한번 짚어볼게요.
1. 고대 및 중세 시대 (~1603년)
- 야마토 시대 (~710년): 일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야마토 정권은 나라 분지 주변, 그러니까 긴키 지방 일대를 다스렸어요. 이때는 혼슈 일부 지역만 통치했고, 지금처럼 일본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 국가 개념은 거의 없었습니다.
- 헤이안 시대 (794년~1185년): 천황과 귀족들이 중심이던 헤이안 시대에는 교토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이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죠. 이때도 혼슈 북쪽에 있던 '에조'는 **'다른 민족'**으로 여겨져서 정복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완전히 일본 땅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 무사 시대 (가마쿠라/무로마치 막부): 막부가 힘을 쥐면서 무사들이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도 홋카이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었고, 류큐(오키나와)는 독립 왕국으로 남아있었어요. 각 지역의 다이묘(봉건 영주)들이 자기 세력을 만들다 보니, 중앙 정부가 모든 영토를 다스리기보다는 각자 알아서 관리하는 분권적인 형태였죠.
2. 에도 시대 (1603년~1868년)
- 영토 통일: 드디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일본 본토, 그러니까 혼슈, 시코쿠, 규슈는 막부와 다이묘들에 의해 통일적으로 다스려집니다.
- 쇄국 정책: 에도 막부는 **'사코쿠(鎖国)'**라는 쇄국 정책을 펼쳐서 외국과의 교류를 아주 엄격하게 막았어요. 그러다 보니 이 시기에는 영토 확장이 거의 없었고, 일본의 영토는 크게 세 개의 주요 섬으로만 한정되었죠. 홋카이도(에도)는 여전히 일본 땅에 편입되지 않은 채 아이누족이 살던 미개척지로 남아있었습니다.
자, 이제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제국주의 시대로 넘어가 볼까요? 일본 제국의 몰락은 불과 수십 년 만에 일어났습니다. 놀랍게도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이 가졌던 최대 영토를 다 합치면 현재 브라질 크기 정도였다고 해요!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시아 국가였는데,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 제국으로 성장해서 제국주의 강대국 중 하나가 된 거죠. 이 어마어마했던 영토는 주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약 3년간 유지되었습니다. 어떤 지역들이었는지 하나씩 살펴볼게요.
- 쿠릴 열도 남부: 이건 아까 말씀드린,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 지역인 쿠릴 열도 남쪽 4개 섬입니다.
- 남사할린 (가라후토):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차지했던 사할린섬의 남쪽 지역이죠. 1905년에 영토로 편입되었고, 일본은 북위 50도 이남의 영유권을 가졌어요. 일본은 이곳에 **'가라후토청'**이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직접 통치했습니다.
- 대만 (타이완):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할양받아서 식민지로 통치했어요.
- 한반도 (조선): 1910년에 합병해서 식민지로 만들었죠.
- 관동주: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조차(남의 땅을 빌려 쓰는 형식) 형식으로 지배했던 랴오둥반도 남단 지역입니다. 여기에 관동군이 주둔했었죠.
- 남양군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령이었던 미크로네시아의 여러 섬들을 1924년에 점령했고, 전승국이 되면서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으로 지배했습니다.
- 중국 동부: 1937년 중일전쟁을 통해서 중국 동부의 주요 도시들과 해안가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여기에는 베이징, 상하이, 난징 같은 주요 도시들이 포함되었죠.
-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서 세운 **괴뢰 국가인 '만주국'**도 있었고요. 1932년에 세워진 만주국의 인구는 1942년쯤에는 무려 4,400만 명까지 늘어났다고 해요.
- 좀 더 자세히 보면, 중국 동부 해안과 주요 도시들을 점령했는데, 화북 지역 (베이징 포함)은 1937년 7월 28일에 화중 지역 (상하이 포함, 양쯔강 유역)은 1937년 11월 26일에 화남 지역 (광저우 포함)은 1938년 10월 21일에 그리고 하이난 섬 등은 1939년 2월에 점령했습니다.
본격적인 영토 확장 시기: 태평양 전쟁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미 태평양 함대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죠. 전함 대부분이 침몰하거나 크게 파손되면서 미국은 필리핀을 포함한 태평양 전역에 대한 해상 및 공중 지원 능력을 거의 잃게 됩니다. 필리핀에 주둔했던 미군과 필리핀군은 고립되었고, 일본군의 침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졌습니다.
- 홍콩: 1941년 12월 25일에 함락됩니다. 일본은 진주만 기습 직후 태평양 전쟁을 확대하면서 홍콩을 침공했어요. 영국군이 방어하려 했지만, 결국 크리스마스에 항복하면서 홍콩은 일본의 통제하에 놓였습니다.
- 동남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통해서 동남아시아의 정말 많은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필리핀: 당시 미국령이었는데, 일본이 진주만 공격과 동시에 침공해서 1941년에 점령했어요. 특히 1942년 5월 6일에는 필리핀의 마지막 미군 요새였던 코레히도르 섬까지 함락되면서, 필리핀 전역이 일본 손에 떨어졌죠.
말레이 반도 및 싱가포르 (영국령): 영국령이었던 말레이 반도를 침공해서 필리핀과 함께 점령했습니다. 특히 '난공불락'이라고 불렸던 영국 해군 기지 싱가포르를 1942년에 함락시켰습니다.
인도네시아 (네덜란드령 동인도):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였는데, 일본이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서 아주 중요한 목표로 삼았습니다. 여기도 1942년에 함락됩니다. 영국 보호령 브루나이도 이때 일본의 지배에 놓이죠.
태국: 태국은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 사실상 일본의 영향권에 편입되었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였죠. 일본은 1940년 9월에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틈을 타서 이 지역에 들어갑니다. 1941년 7월에는 일본이 인도차이나 남부까지 군대를 확장하면서 미국과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고, 이 때문에 미국이 일본에 석유 금수 조치를 취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미얀마 (버마): 영국령이었는데, 중국-버마 간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서 1942년 1월에 점령했습니다. 1942년 5월에는 일본군이 버마의 주요 거점들을 다 점령하고 영국군을 인도 국경까지 몰아냈죠. 버마는 나중에 인도를 침공하기 위한 일본군의 전략적 요충지가 됩니다.
아, 그리고 일본군은 미얀마를 점령한 후에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였던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까지 점령했어요. 이건 인도 본토를 점령한 건 아니지만, 인도 영토의 일부를 점령한 거죠. 태평양 전쟁 초기인 1942년 3월 23일에 일본군이 이곳을 점령했는데, 이 지역이 전략적으로 정말 중요했거든요. 벵골 만에 있어서 연합군의 해상 보급로를 막고, 영국령 인도와 미얀마를 잇는 핵심 길목이었으니까요.
인도 본토 침공과 실패
1944년입니다. 안다만 제도를 점령한 이후, 일본군은 인도 독립 운동가인 찬드라 보스가 이끌던 인도 국민군과 함께 인도 본토의 임팔과 코히마를 침공했습니다. 이 작전은 **'임팔 작전(Operation U-Go)'**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임팔 작전은 일본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참혹한 패배로 끝납니다. 보급 문제도 심각했고, 연합군의 저항도 너무 강력했거든요. 결국 일본군은 인도를 점령하는 데 실패하고 미얀마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태평양의 섬들: 솔로몬 제도, 길버트 제도, 뉴기니의 일부 지역 등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들을 점령했어요.
- 솔로몬 제도: 1942년 초에 일본군이 이곳에 들어와서 여러 섬에 기지를 만들었죠. 특히 과달카날 섬에 비행장을 만들면서 호주와 미국의 연결 통로를 위협했습니다. 이게 미국이 반격 작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1942년 8월에 미군이 과달카날에 상륙하면서 정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1943년 초에 일본군이 과달카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 길버트 제도: 진주만 공격 직후인 1941년 12월에 일본군이 길버트 제도(지금의 키리바시)의 일부 섬들을 점령했습니다. 이 섬들은 일본의 태평양 전선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하지만 1943년 11월, 미국이 타라와 환초 전투에서 일본군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섬을 다시 빼앗으면서 길버트 제도는 미군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 뉴기니: 1942년 초에 일본군이 뉴기니의 동쪽과 북쪽 해안을 점령했어요. 이건 호주 침공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목적이었죠. 그런데 미군과 호주 연합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고, 치열한 전투 끝에 일본군이 서서히 밀려났습니다. 1944년에는 연합군이 뉴기니 섬의 주요 거점들을 다시 빼앗으면서 일본군의 뉴기니 방어선은 사실상 무너지게 되죠.
이 모든 지역들은 미드웨이 해전(1942년 6월)에서의 패배 이후 특히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소련이 대일 참전하면서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체제가 붕괴했죠. 1947년 5월 3일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명시한 헌법 시행과 이후 여러 과정을 걸쳐 현재의 영토에 이르렀지만 현재의 일본 영토의 여러 부분에서 여전히 지난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게 되는거죠.
오늘은 이렇게 일본의 영토가 왜 지금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지, 그리고 과거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얼마나 넓은 영토를 가졌었는지 자세히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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